어머니와 놋그릇


명절 때였다.


저녁을 먹고 어머니와 뉴스를 볼때
명절때면 으레히 벌어지는 유산과 상속으로 부모와 자식
그리고  형제들간의  우애가 땅으로 떨어지고
그것으로 씁쓸한 명절이 된다는 내용이었다.

순간 뉴스를 보며 장난끼가 발동하여 어머니에게 물었다.



- 엄마...엄마는 나에게 물려줄거 없어요?

- 있어도 ~ 넌 안줄거다. 다.... 딸네들 줄거다 ... 왜! "
- 헉 ..엄마 뭔 그리 섭한 말씀을 ..."


나의 농섞인 말에 어머니의 대답 또한 나를 웃음 짓게했지만
나와 누나들에게도 물려줄 재산이 있을 리 만무하다.
...

아버님의 사업실패로
어머니는 그때부터 길바닥으로 내몰린 우리 5남매를 키워왔다.
세계 7개 불가사리가 있다고하지만
그 당시 어머니께서 우리 5남매를 키우셨는걸 생각하면
그것 또한 불가사리며
여전히 풀지 못하는 수수께끼다.


한번도 내색하지 않았지만 난 알고있다

누님들이 형과 나를 위해 등록금을 모아주었고
어머니는 품을 팔아 학용품 값과 도시락을 싸주셨다.
그 당시 제일 기억나는건
내가 중2때 교복 자율화가 되어
모두가 새로운 가방과 메이커 옷으로 멋을낼 때
형은 교복 입고 다닐 때 그 가방(짙은 초록색)을
고등학교 졸업할때 까지 들고 다녔던 것으로 기억된다.
결코 가깝지 않았던 그 통학거리를 항상 걸어서 다녔다.

나에겐 어머니가 우리 5남매를 어떻게 키워 왔는지가 불가사리지만
어머니는 그 당시 형을 대학 보내고
등록금을 보내준 기억이 몇번 되지 않았는데
어떻게 졸업을 했는지가 수수께기라고 항상 말씀 하신다.

나에게 있어 형은 부모님 이상의 존재다.
지금은 해외로 나가 있지만
예전에 한국 있을때 주말이면
항상 형과 같이 시간을 보내곤 했었다.
그러고 보면 안산에 있는 형을 만나러 가기위해
평택 - 안성간의 고속도로를 달릴때가 제일 행복했었다.


...

물려줄것이 없냐는 나의 물음에
일언방구도 하지 않으시던 어머니께서
다른 방으로 가시더니
보자기에 곱게싼 무엇인가를 가져오셨다.

뭔가하고 유심히 들여다 봤지만
별로 기대는 하지 않았다.



 

- 이게 뭐야?
- 놋그릇이지 보면 모르니?

- 누가 놋그릇인지 몰라, 그런데 이걸 왜 가져왔냐고 !
- 이건 네가 가져가거라.
   이 그릇은 내가 시집올때 가져왔으니 수십년이 넘었지.
- 어휴, 이런거 말고, 남들은 부모 잘 만나서 좋은데, 난 뭘까 몰라~!!!!


난 싫다고 한쪽으로 치워놓은 놋그릇을
내가 명절을 끝내고 집으로 돌아올때
어머니는 그 보자기 그대로 싸서
다른 것들과 함께 내 차안에 두었다.


그 어떤 일이 있어도
난 어머니 앞에서 눈물을 보이지 않는다.

평생을 눈물속에 살아오셨기 때문에
내 눈물이 그분에게 더 짐이 될까봐서이다.


고향을 떠나 돌아오는 길에 
그 보자기를 몇번이고 만지며
그 동안 참았던 눈물을 흘렸다.

그후로

어머니가 그리울 때면 
그릇속에 담겨진 어머님의 모습을 본다.
눈물속에 살아오신 어머니의 그 많은 날들이
그릇속에 투영될 때마다

나의 눈물은 그 그릇에 가득찼으며
그것은  내 마음의 정화수가 되었었다.

어머니가 나에게 물려주신 건 놋그릇 두개였지만
그 놋그릇에는 그 어떤것으로도 바꿀 수 없는
어머님의 사랑이 담겨져 있음을 난 알고 있다.


어머니..
어머니..

나의 어머니 ..





2008.06.11 23:02 T 0 C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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