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후부터 흩날리던 눈발이 온 세상을 덮으며 새로운 빛으로 어둠을 밝히고 있다. 한낮의 부산스런 움직임도 눈속에 묻혀 고요함속에 새벽을 맞는다. 깜박 잠들어 깨어보니 책상에 엎드려 그대로 잠든 모습이라, 그렇게 불편을 느끼지 않고 잠들 수 있었음은 신의품처럼 따스한 음악과 소리없이 내리는 눈의 고요함 덕분이였을 것이다. 잠자는 동안 계속 흘렀을 음악을 들으며 예전에 읽었던 콜베신부를 문득떠올렸다. 나를 버림으로서 진정한 사랑을 깨우쳐주신 콜베신부를 만난다.


1941년 세계 2차 대전중 폴란드에 세운 악명높은 '아우슈바츠' 유태인 포로 수용소가 있었다. 단지 유태인이라는 한가지 이유 때문에 죄없이 생지옥에 끌려와 언제 닥쳐 올 지 모르는 죽음의 공포에 떠는 수만명의 포로들...하루에도 많은 사람들이 가스실의 이슬로 사라져 갔고, 가스실의 굴뚝의 연기는 그칠날이 없었다.

그러던 어느날 포로1명이 탈출하게 되며, 24시간안에 그 포로가 잡히지 않으면 그 포로가 속해있던 막사의 포로 가운데 10명을 대신 죽이는 자기들만의 규칙을 만들어 나치의 잔인함을 보였다. 그러기 때문에 그 누군가가 탈출할 것을 결심한다는 것은 곧 자기와 같은 포로 10명의 죽음을 각오해야 했고, 만약 탈출 계획이 발각되면 나치보다 같은 방 포로의 손에 죽음을 당하는 일이 허다했다. 남아 있는 막사의 포로들은 탈출한 그 포로가 빨리 잡히길 바랄뿐이였으며, 잡히지 않으며 언제 죽을지 모르는 공포를 안고 하루하루  떨며 지냈다. 그 가운데 폴란드 병사였다가 포로가 된 "프란치셰크 가이오니체크" 와 폴란드인쇄공이었던 "미치슬라오 코시체르니아크" 도 끼어 있었는데 그는 마음이 너무 약했던 지라 밤마다 울며 탄식했다. 그 곁에 조용한 목소리로 "희망을 가지십시요, 하나님은 우리를 버리지 않으십니다. 희망을 가지고 굳게 버텨 나가십시요, 조용히 ... 그리고 진실로 기도하십시요" 하고 누군가 말을 건낸다.
그곳의 포로들은 그가 누군지 잘 모르고 그냥 교회 목사쯤으로 생각하며 언제 죽을지 모르는데  영원한 생명 어쩌고 하고 있는 그 사람을 한심하게 생각한다.

24시간이 지나고 포로는 잡히지 않았다. 결국 그 막사에 있는 10명의 포로들이 죽음을 맞이하는 시간이 오고, 그곳의 소장 프리츠는 포로들을 모아놓고 기분내키는대로  10명의 포로들을 각출한다. 그에 호명된 포로들은 그 자리에 주저않거나 울며, 완강히 살라달라고 하는등 몸부림을 치지만 소용없는 일이되고 만다. 그중에 위에서 말한 "가이오니체크" 도 호명되었는데 그는 부모와 아내, 아이들이 있다며 살려만 준다면 무슨 일이든 하겠다고 하지만 소용없이 일이 되고만다. 그때 어떤 포로가 한발자국 앞으로 나서 소장에게 소원이 있다며 저사람(가이오니체크) 대신 자기를 처형해 달라고 하며 ... 나의 죽음을 슬퍼할 사람은 아무도 없기에 가족이 있는 그 사람대신 자기를 처형하기를 부탁한다. 그토록 숱한 사람들이 죽어가면서도 저만 살겠다고 최후의 순간까지  몸부림치는데, 남을 위해 대신 목숨을 바치겠다는 사람을 본 프리츠 소장은 그에게 직업을 물었다.

" 카톨릭 신부 ... 콜베신부 입니다 "


역시 무엇인가 다르다고 생각했던 소장은 잔잔한 인간미를 느꼈다.
그 콜베신부의 사랑에 감동을 받은 ' 가이어니체크'가 신부님의 숭고한 뜻으로 하여금 편안하게 죽음을 맞을 수 있다며  자기가 죽겠다고 신부님에게 울며 매달린다. 그곳에 많은 포로들과 군인들은 콜베신부의 숭고한 희생정신에 소리없는 감동으로 일렁이고 있었다. 하지만 전쟁을 하는 마당에서 따뜻한 인간의 사랑은 짓밟히기 마련인것 콜베신부도 예외는 아니였다. 소장은 콜베신부의 부탁을 들어주기로 하며 콜베신부를 포함한 10명을 끌고 간다. 앞장 선 콜베신부의 뒤를 따르는 9명의 사형수들도 신부의 용기에 힘을 입었는지 조용히 죽음을 향하여 걸었으며 오히려 눈물을 흘리는 사람들은 선택의 죽음에서 피할수 있었던 포로들이였다.
  
Maximilian Kolbe
 
1894년 한폭의 그림인양 조용하고 티없이 맑은 폴란드의 농촌에서 가난한 농부의 아들로태 태어나 1941년 8월 아우슈바츠 수용소에서 생애를 끝마쳤다. 콜베신부가 10살 되던 소년시절 그의 어머니는 신비한 꿈 이야기를 들려주었는데,성모 마리아가 나타나 콜베 머리위에 흰관과 붉은관 2개를 얹어 주었다는 꿈이였다.  교리에 의하면 흰색은 '순결' 붉은색은 '순교'을 뜻한다. 소년 콜베는 이때부터 성직자가 될 것을 결심했으며 순결한 삶과 순교를 꿈꾸었다.그는 로마에 있는 그레고리우스 대학에 유학하여 21세란 젊은 나이로 철학박사 학위를 받고 이듬해 또 신학박사 학위를 받는다. 폴란드에 돌아온 뒤 그는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월간지를 펴냈는데 나치에 의해 강제로 폐간될 때까지 수백만부에 육박했다. 조국 폴란드에서 선교활동을 펴던 콜베신부는 국민의 존경을 받는 정신적인 지도자였다. 1939년 히틀러가 폴란드를 침공하자 그는 강력한 반 나치운동을 벌였고 수도 바르샤바가 함락되자 1급 정치범으로 체포되고, 그후 한동안 풀려나왔다가 1941년 2월17일 나치의 적으로 다시 체포되어 죽음의 아우슈바츠수용소로 끌려왔다. 가축용 화물차에 실려 개돼지처럼 강제로 끌려온 그를 기다리는 것은 빵과 양배추 형편없는 식사와 뼈 빠지는 중노동뿐이었다. 그 죽음과 같은 생활 속에서 탈주사건이 터졌고, 그가 어렸을 때부터 다짐해 왔던 순교의 길이 열렸으며, 그의 어머니 꿈대로 콜베신부의 머리 위에 붉은 관이 성모마리아의 손으로 씌어지게 되었던 것이다.
 
사형선고를 받은 10명의 죄수들은 어두운 지하감옥에 갇혀 물한모금 빵 한조각 없이 기운이 다할 때까지 다가오는 죽음을 기다려야했다. 그러나 그 누구도 두려워하거나 고통스러워 하는 사람은 없었다. 콜베신부의 숭고한 희생정신에 용기를 얻은 그들은 기도와 찬송가로 다가오는 죽음을 맞고 있었다. 죽음을 앞둔 죄수들이 부르는 찬송은 그곳의 독일군인들의 가슴도 흔들어 놓았을 정도로 맑았다고 한다.  

2주일이 지나면서 죄수들은 차례차례 죽어갔으며 15일째 되는날 모두가 죽어가고 마지막 콜베신부만 살아남았다. 생명이란 참으로 고귀하고 질긴것이라는 마음에 프리츠소장은 그를 살려주고 싶다는 생각이 들지만 상부의 지시 때문에 마음대로 할 수 없음에 괴로워하다가, 마지막으로 그를 위할 수 있는것은 그가 편안히 죽음을 맞이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 뿐이라는 생각에  고통없이 죽도록 하는 '페노르' 주사를 놓는다. 의무실에 실려온 콜베신부는 미소를 머금고 팔을 내밀며 " 성모 마리아여... 이 몸을 거두어 주옵소서 ... " 한마디 나지막하게 말하고 영원히 눈을 감는다.

콜베신부가 순교한지 20년의 세월이 흘러 1971년 10월 17일 로마의 " 성 페트로" 대성당에서는 폴란드에서 온 8,000명의 남녀 신도가 모인 가운데 장엄한 종교의식이 거행되었다. 믿음과 사랑으로 거룩하게 최후를 마친 콜베신부를 "복자"로 추대하는 종교 의식이었는데 크리스트교에서 거룩한 순교자를 '성자'로 높이 존경한다. '복자'란 '성자'가 되는 준비과정의 믿음이 깊은 신도를 일컫는데 믿음과 사랑의 거룩한 업적이 바티칸 교황청의 인정을 받아야 하는 것이다. '복자'로 추대되면 전 세계의 모든 크리스트교 신도들에게 영원히 존경을 받게 된다. 엄숙한 의식이 거행되는 동안 흐르는 눈물을 가누지 못하는 백발이 성성한 두 노신사가 있었으니 그들은 콜베신부의 희생으로 생명을 건진 폴란드 병사 '가이오니 체크'와 ' 코시체르니아크' 였다. 그들은 콜베신부의 희생을 생생하게 증언하여 신부를 추대하는데 큰 역할을 했던 것이다. '복자 콜베신부'의 초상화가 제막된 후 교황은 감동에 떨리는 목소리로  말한다.
 
"그가 생명을 던져 구한 것은 비록 한 사람의 생명이였지만, 그의 영웅적인 죽음은 너무나 많은 것을 우리에게 남겨주었으며 그 암흑의 시대에 콜베신부는 우리에게 영원한 빛을 던져주었던 것입니다
." 

Stockholm Cathedral Choir
There's wideness in God's Mercy

성가곡은 그 어떤식으로 부르고 연주하든지 평안함을 준다. 그런 의미에서 여기에 수록된 성가곡들은 플루트와 기타등 너무 대중적인 악기들로 연주하여 가벼워지지  않을까하는 생각을 할수도 있겠지만 오히려 그렇게 다가오는 음들이기에 마음에 평안을 준다. 그렇다고 경건함이 배제되어 있지않으며 장중함속에 울려퍼지는 합창과 오르간의 울림은 듣는이로 하여금 엄숙한 마음을 갖게하는 자리도 마련해 두었다.





Epilouge

주님을 떠난지 수해가 되었지만  그 사랑은 잊지 못한다. 아득히 먼 그때 내가 주님을 처음 만나, 내 나름대로의 봉사활동에 주님은 잊지 않고 은총을 내려 주셨다. 음악을 들으면서 글을 쓰는 중에  그때의 기억이 투영되어 잔잔한 눈물이 흘러 바람을 쐬기위해 밖에 나가니 많은 눈들이 내려져 있다. 보드랍게 만져지는 눈을 한움쿰 쥐어보면서 문득 이 하얀 눈들은 하늘로간  콜베신부님의 결정체가 아닐까하는 생각을 한다. 크리스트교에서 말하는 순결과 순교의 모든것을 아낌없이 나누어 주는 그들이 있었기에 난 아주 평화로운 새벽을 맞을 수 있을것이다. 
 
더블어 이 시간 우리에게 희망의 빛을 던져준 콜베신부의 사랑이 모든이에게 눈처럼 내려지길 바라며 삶이란 생각하는 이상으로 아름답고 고귀한 것임을 알고 어떤 상황속에서도 슬퍼하거나 낙담하지 않고 무엇인가를 간절히 원할 때 꿈은 이루어지며 그 꿈을 믿는 용기만 있다면 세상은 마법으로 가득찬 우주가 된다는 어느 책의 쓰여진 글귀를 되새겨 본다. 
  

2007 12 30



2008.04.25 17:55 T 0 C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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