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이먼 은파와 하얀 레이스의 설레임




  내가 살던 고향 영주에는 번개시장이라는 곳이 있었다. 말 그대로 번개처럼 생겼다가 번개처럼 사라지는 시장이였는데 영주를 둘러싸고 있는 시골에서 할머니들이 직접 가꾼 채소와 농산물을 가져와서 팔고 거래하는 곳이었다. 영주역에서 그리 멀지 않는곳에 자리잡고 있어서 장날이면 영주로 들어오는 기차와 역은 말 그대로 사람반 농산물반이었다.

  자식처럼 키운 큰 호박을 하나 팔기위해 기차를 타고 오신 할머니들도 있었고 햇볕 잘 드는 곳에 말린 고추와 밭에서 금방 뽑아온 싱싱한 나물들, 시장 인심이라는게 부르는게 값이라 다 팔지 못한 할머니들은 기차시간에 쫓겨 지나는 사람들에게 싸게 줄테니 가져가라고 하지만 지나가는 사람들은 힐긋 보기만 할뿐 다가서지는 않는다. 결국은 마지막 기차 시간으로 돌아가야 하기에 몇 개 남지 않는것을 팔기위해 할머니들은 눈물을 머금고 거져 주다시피 자식처럼 키운 농산물을 팔기 시작한다. 이때를 놓치지않고 사람들은 모여들기 시작하여 조금전까지도 보자기위에 펼쳐진 농산물들은 게눈 감추듯 없어진다. 
그 번개시장 끝 3층건물이 하나 있었는데 그곳에 내가 처음으로 다닌 피아노 학원이 있었다.

  나름대로(?) 모아온 2만원(그 당시 레슨비)을 가지고, 그곳을 찾았을때 하얀레이스 달린 원피스(공주풍)를 입은 선생님에게 난 홀딱 반했다.
  그 모습이 얼마나 아름다웠던지, 그 당시 내 나이 16세 - 한참 사춘기를 겪는 나의 마음은 내가 배우고자 했던 "은파" 물결처럼 파동치고 있었다. 갓 대학을 졸업해서 학원을 차렸으니 얼마나 꽃답고 아릿다운 모습이였겠나. 내가 처음 갔던 그날, 난 그자리에서 선생님에게 이 '은파'를 연주해 줄것을 부탁하였다. 선생님은 쾌히 승낙해 주었으며, 그날 레슨을 받으러온 아이들과 함께 난 '은파'를 머리털나고 처음으로 직접 들을 수 있었다.

  긴생머리가 옷을 둘러싸고 있는 레이스에 닿아서 하늘하늘 거릴 때 마다 가슴이 뛰었고, 가냘픈 손이 건반위에서 물결처럼 잔잔하게 일렁일 때, 내 마음은 폭풍처럼 곤두박질치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것은 시작에 불과했다. 
본격적으로 레슨을 받기 시작할때쯤 선생님은 내가 앉은 피아노의자 그 모퉁이에 앉으시고, 선생님 과 나는 약깐 밀착된 상태로 그렇게 레슨을 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내 손모양을 교정하기 위하여 손을 이리저리 잡아주셨을 때는 심장이 멎을 것 같았으며 가슴이 터질 것 같았다
. 선생님이 뭐라고 하시는것 같았지만, 내 머리는 뒤죽박죽이어서 마치 장질부사에 걸린 것 처럼 정신이 혼미 해 져가고 있었으며, 선생님의 말씀은 내 고요한 마음의 정적을 뚫고 날아온 화살처럼 날 스쳐 지나갔다. 그 짧은 순간이 기나긴 영원과도 같았기에 몇수십년이 지나도 잊지 못함이다. 그때 내가 처음으로 피아노를 배웠지만, 아기 걸음마처럼 서툰 첫사랑도 배웠다면 이상할까?

  오후 햇살이 하루종일 내리쬔 따사로움 때문에 가을이 잘구운 빵처럼 부드럽게 익어 가고있다. 이 가을 사랑을하고 있거나, 다가올 사랑에 대해 설레임이 있는 그 모든이에게 따사로움이 내리쬐어 그들의 사랑도 이 가을과 함께 무르익었으면 좋겠다.           



2007 10 05



2008.04.25 23:01 T 0 C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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