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차르트에게 바친 아이블러의 사랑

1791년 어쩌면 지금과 같은 봄날에 모차르트는 알 수 없는 인물로부터 <레퀴엠> 작곡 의뢰를 받았다. 하지만 그것은 완성되지 못한 채 모차르트는 그해 겨울 12월 5일에 눈을 감았다. 슬픔도 잠시, 다급해진 콘스탄체는 레퀴엠 작곡료로 받은 절반의 선금 때문에 고민을 하다가 생전에 모차르트의 절친한 친구 요제프 레오폴트 아이블러에게 추가로 작곡해줄 것을 부탁한다. 아이블러는 미완성으로 된 레퀴엠을 어느정도 진행 하다가 이 작업을 중단한다. 그 후에 '쥐스마이어'가 곡을 완성하긴 했지만 첨에 아이블러의 작곡한  오케스트라의 부분은 지금까지 연주되고 있다.


Friendship with Mozart

왜 ?  아이블러는 끝내 <레퀴엠>을 마무리 짓지 못했던 것일까? 오늘밤 난 그것에 대해 생각해 봤다. 물론 그 어디에서도 아이블러가 레퀴엠을 마무리 짓지 못한것에 대한 언급은 없다. 아마 여러가지 이유가 있었을지 모르지만 적어도 그가 모차르트에 향한 마음을 생각해 볼 때, 이런 생각도 든다. 즉, 아이블러는 모차르트가 병고와 신음할때 그 모든것을 옆에서 지켜 보며 모차르트를 간호했었다. 몸이 불편한 모차르트를 위해 그를 정성껏 돌보면서 그의 손과 발이 되었다. 그러면서도 그는 참 행복했었다. 그것은 그가 얼마나 모차르트를 사랑했는지 알 수 있다. 어떠한 약속도 없이 모차르트를 만날수 있다는 행복이 있었으며, 모차르트와 함께 한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그는 참 행복했었다. 때로는 병마와 싸우고 있는 사람보다는 그 옆에서 그것을 지켜 보는 사람이 더 힘들때가 있다. 어쩌면 아이블러도 고통속에서 죽어가는 모차르트를 옆에서 지켜보며 참기 힘든 아픔이 있었으리라 생각된다. 그런 그에게 모차르트가 죽고 난 후 콘스탄체가 의뢰한 <레퀴엠> 은 그에게 어쩌면 더 절망적인 삶이였는지 모른다. 그토록 사랑했던 친구를 잃어버렸는데, 그 친구가 쓰다만 죽음과 인간 고통에 대한 비극적인 작품을 누군들 쓸수 있단 말인가. 그랬을 것이다. 콘스탄체의 <레퀴엠> 을 의뢰받고 진행하던중 곡에 투영 되어 죽어가는 모차르트의 모습에 그는 더 이상 곡을 쓸 수 없었을 것이다. 절실한 친구를 잃어버린 슬픔이 아직 남아 있거늘 그런 그에게 <레퀴엠> 은 모차르트의 모습을 더욱 생생히 떠올리게 하여 그를 더욱더 슬프게 했을 것이다. 끊임없이 생명을 잃어가는 절실한 친구의 최후를 그리며 그 누군들 타오르는 슬픔을 참을 수 있단 말인가. 아이블러가 <레퀴엠> 의뢰를 받고 진행하던중 멈춘 부분이 바로 <Lacrimosa : 눈물의 날> 인 것이다.

글을 쓰면서 아이블러의 현악오중주op.6 No.1 을 되풀이하며 들었다. 아름답고 유려한 선율들이 맑은 새벽 밤 하늘에 수 없이 쏟아지는 느낌같다.  이 곡에는 반복적으로 울려퍼지는 부분이 세부분 나온다. 그 부분에서는 솔직히 가슴이 벅차다. 유려하고 아름다운 선율은 어디 가고 슬픔만 남았는 느낌이라고 해야겠다. 아닐 것이라고 믿는다. 반듯이 그렇지 아니 할 것 이다. 그럴리가 없을 것이다. 하지만  난 그렇게 생각하고 싶다. 반듯이 그렇게 생각하고 싶다. 반복처럼 흘려나오는 그 세부분은 지난날 그와 모차르트의 행복했던 삶에 대한 추억이며 그것은 천상에서 둘이가 만나 영혼까지 사랑하며 어루어 만져주는 모차르트에 대한 그의 절대적인 사랑이라 말하고 싶다. 사람은 가고 음악은 남아 우리들의 마음을 아련하게 만들며 그것으로 하여금 많은 눈물과 새로운 희망을 갖기도 한다. 음악이란 예술이란 바로 이런 것이다.



2008.04.26 16:57 T 0 C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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