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이 만들어 준 자연



그곳을 찾은 건 몇번 되지 않는다. 손으로 꼽을 수 있는 그 시간속에 그 사람도 있었다. 나는 오늘 나를  밟고 지나간 시간을 거슬러 집에서 멀지 않은 그곳을 다시 찾았다.  문득 떠나고 싶었기에 별다른 준비없이 따사로운 겨울 햇살에 안부를 물으며 길을 나선다.




이곳에 사는 많은 이들에겐 그곳(대청호)이 드라이브 코스로 많이 알려져 있다. 그도 그럴것이 이곳에는 별 다르게 갈곳이 없는 것이 그 이유이기도 하다. 그렇지만 그곳의 드라이브 코스는 그 어디에 내어놓아도 빠지지 않는다. 오랜세월 자연속에서 아름답게 다듬어진 수목과 야산이 병풍처럼 호수를 감싸고 있는 모습이란 사계절 내내 이국적인 산수를 드러낸다. 호반에 걸맞는 이름처럼 넓고 큰 바다빛 같은 호수는 차창을 뚫고 눈에 잔뜩 푸른 기운을 머금게하고, 여름이면 푸르름에 우거진 녹음들이 온 세상을 덮기도 한다.


호수를 감싸고 있는 도로를 달리다 보면 일렬로 줄지어선 아름드리 플라타너스와 백합나무가 도열하고 옹기종기 모여 있는 어느 작은 마을 굴뚝 연기는 꿈에서나 맛볼 수 있는 구수함을 전해준다. 초록이 학교 갈 때쯤이면 가족 혹은 연인들은 삼삼오오 그곳 그늘진 잔디밭에 자리를 펴고 누워 신선 놀음을 즐기곤한다. 오래전 나도 그랬다. 아래 사진은 그날 찍은 사진이다. 새순이 돋아나고 초록이 갓 푸름에 5~6월 정도 되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활승안개인지 산안개구름인지 알 수 없는 신비로움에 휩싸여 쥐죽은 듯 고요한 그곳을 바라보던 모습은 사진속의 안개처럼 아직 걷히지 않았다.



집을 나선지 30여분만에 문의사거리에 도착하고 댐의 수문이 있는 반대(청남대)방향으로 돌기시작한다. 이곳은 외지인에 대한 관광 연계코스가 허브랜드, 대청호, 그리고 청남대이다. 청남대는 딱 한번 가봤다. 대통령은 어떻게 사나 싶지만 ...별반 다른것은 없다. 좀더 솔직한 말로 볼 것이 없다. 사람사는게 다 똑같지 않은가! 이곳 호반을 끼고 밭을 일구며 간소하게 살든, 넓고 궁전같은 뾰쪽지붕 아래에서 우아하게 살든 부여받은 삶에 만족하면서 행복하게 사는것이야 말로 삶이 주는 선물을 진정으로 느끼는 자가 아닐까하고 대답없을 호수에 묻는다.



사거리 갈림길에서 얼마를 달리지 않아 호수가 들어오기 시작한다. 좌로는 야산이며 우로는 굽이굽이 끝없이 펼쳐지는 호수다. 호반을 끼고 10여분을 더 가니 괴곡삼거리가 나온다. 그곳에서 직진하여 얼마 지나지 않으면 청남대가 나오지만,  나는 좌회전을 하여 재를 하나 넘고 얼마간을 더 달려 염티삼거리에서 다시 우회전을 하여 외통수와도 같은 길로 접어들어선다. 맞은편에 차가 하나 오기라도 하는 날에는 꼼짝 달싹 못한다. 다행이도 이날은 차가 없었다. 이곳은 너무나 외진 곳이라 차들이 거의 다니지않고 사람들도 없다. 또한 핸드폰, 내비게이션이 무용지물이다. 이 모든것들이 나를 이곳에 부른 또 다른 이유다.


산길인지 도로인지 알 수 없는 길을 갈 때 산과 산 사이의 숨결이 밭두둑을 타고 흘러온다. 햐~아 ..크게 한숨 들이킨다. 나의 수액이 세상속에 메말라갔을 때, 그들은 자신들의 계곡을 통하여 흐르는 물처럼  나에게 숨결을 공급해 주었다. 그리고 그것은 음악과 함께 내가 언제나 걸고 있어야 할 링거가 되어 시한부같은
 삶을 지켜주었다. 사진을 찍을려고 언덕에 앉으니 속살이 조금 보이는 그의 부끄러움을 호수가 미안해 할 것 같다. 하지만 그러지 말라고 했다. 부끄러움도 솔직함도  늘 가면속에 감추며 살아온 내가 어디로 가야할지 몰라서이다. 참으로  그들은  바르고 곧다. 원래부터 그랬을 것이다. 그래서 자연이 되었겠지, 삶의 종착역에서 누구에게나 돌아가고 싶은 그곳. 하지만, 누구에게나 허락된 것은 아닐 것이다. 믿는자들에겐 그들의 조물주가 후세를 약속했겠지만, 이렇게 믿지 않는자에겐 그곳이 유일한 마지막 안식처이다. 그곳에 가기 위해서는 그들과 같아야 함을 깨닫는다.

조금은 비탈지고 외진 길을 몇분여 더 가니  후곡리라는 작은 마을이 나온다. 섬처럼 군데군데 둥지를 틀고 있는 이들은 댐건설로 마을이 수몰되어 이곳까지 내려왔다고 하며, 그중에는 헬렌과 스코트 니어링처럼 이 호반의 숲속에 삶을 묻고 싶어 하는 이들도 있었을 것이고, 때로는 절망과 아픔을 지니고 무작정 온 이들도 있겠지만, 그들 모두는 삶의 주는 소중한 선물을 받고 산사와 같은 이곳에서 또 다른 희망을 일구며 살고 있다.

언덕 비탈길을 내려오니 줄지어선 억새들이 유일하게 날 반겨준다. 찻길도 아닌 이곳에 움푹 패인 자동차 발자국들을 보니 이들이 얼마나 몸서리를 쳤을까라는 생각이 들며, 나 역시 이들에겐 행여나 불청객이 되지 않을까 하여 간간히 부는 바람도 다독거리며 강가로 나선다.


내가 도착할 때쯤 해는 뉘엿뉘엿 넘어가고, 나는 그곳에 쪼그려 앉았다. 얼마나 조용한지 내 숨소리에 작은 물결이 일어 내 앞에서 물방울을 터트린다. 해가 넘어가고 어둠이 지면 이들도 잠들어야하고 난 이제 돌아가야한다. "흐르는 것이 물뿐이랴 우리가 저와 같아서 강변에 나가 삽을 씻으며 거기 슬픔도 퍼다 버린다" 라고 시인은 얘기 했지만 난 이곳에 슬픔을 버리진 않았다. 이젠 버릴 슬픔이 없기 때문이다.

겨울녘 해는 유난히 빠르다. 사방을 둘러싼 산들이 이불자락처럼 호수을 덮어주며 나에게도 이별의 인사를 건낸다. 나는 오늘 진실한 마음으로 이들에게 다가 갔으며 그것으로 이곳의 모든 이들은 나를 따뜻하게 감싸주었다.

내가 사랑하는 산과 호수야. 너희들의 그 마음은 참으로 착하고 아름답구나. 내가 너희를 닮지 못해 그곳을 쉽게 떠나지 못하며 눈물을 흘렸지만, 언젠가 너희에게 새로운 별이 빛날 때 두번 다시 울지 않을거라 약속한다.

알 수 없는 그 언젠가 이들을 다시 만날 수 있을테지만, 이별은 늘 슬프다. 고요하게 잠들어 있는 이들에게 자장가 한소절을 마음으로 불러주며 어느 깜깜한 새벽 혹시나 너희가 외롭고 슬플 때, 그 땐 내가 별이 되고 달이 되어 너희들을 비추어줄 것이라 맹세하며 언덕을 오른다.

이번에 찍은 사진중 가장 마음에 드는 사진이다. 위에 사진은 어둠이 내려앉기 전에 찍었으며, 아래 사진은 어둠이 내려앉았을 때 찍었다. 언덕에 앉아 어둠이 내리는줄도 모르고 상념에 잠겼을 때 언덕 아래에서부터 바람이 앙상한 나무들을 스치며 지나간다. 그 때 그 바람과 함께 실려온 누군가의 목소리 .. 그것은 나에게 숨결을 불어 넣어준 그들을 만든 신의 목소리였다.

신은 내게 말했다.
└ 저 작은배에 그날로 돌아갈 수 있는 열쇠를 줄테니 돌아가고 싶으면 가라고 한다.

나는 망설이지 않고 대답했다.
└ 아닙니다, 이젠 떠나야지요. 그것이 당신이 만들어 준 자연 아닙니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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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12.29 21:35 T 0 C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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