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삶에 가장 빛나는 시간

퇴근길에 집앞 가게에서 가끔은 장을 본다. 얼마전 없어진 마트에 비하면 작은 가게지만 혼자 먹을 장바구니는 충분히 해결할 수 있는 곳이다. 그 가게 주인장과 오랫동안 앞면이 있어 언제든지 내가 부족하지 않게 나물이며 과일을 큰 손으로 집어주시곤 한다. 가끔은 주인장의 손이 조금 더 컸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지만 넘치지 않고 부족하지 않으니 더 이상은 욕심이란 것을 안다.

집에서 멀지 않은 곳에 대형 마트가 있지만 굳이 카트를 밀고 다니며 장을 보고 할 일은 이제 없다. 사실 그곳에 가면 욕심이 많이 났다. 진열된 어떤 코너든 그냥 지나치는 법이 없었으니 말이다. 그 결과로 나에겐 지금은 별 쓸모가 없게된 예쁜 머그컵과 물감 한번 묻히지 않은 붓과 파렛트등이 내 방 한켠에 고스란히 먼지만 쌓여간다. 단지 예뻣다는 이유로 내 눈에 띄어 기약없는 자신들의 용도를 기다리고 있다.

가게에서 채소며 식재료를 사고 과자도 몇봉 집어든다. 과자는 좋아하지 않지만 꼭 사는 이유는 따로 있다. 가게에서 집으로 오는 길에는 산딸나무, 계수나무, 층층나무등 많은 나무들이 이 계절에 푸르름을 더하고 있다. 지상에 주차하지 않고 지하에 주차할 때마다 나는 일부러 지상으로 걸어 올라가 그 나무들을 한번씩 스다듬어준다. 그 나무들이 얼마나 자랐으며 그 잎들이 얼마나 더 푸른지 또 어떤 잎들이 새로이 돋아났는지 이렇게 나의 하루는 그 나무들을 보듬는 것으로 저물어간다.


엘레베이터 앞 - 내 양손이 짐으로 꼼짝 못할 때, 어떤 어린이는 몇층가세요? 이렇게 친절하게 물어보고 층수를 눌러준다. 나는 그 보답으로 조금전에 샀던 과자들 그 아이에게 선물한다. 때로는 그것이 아닐지라도 엘레베이터 안에서 마주치는 아이들에겐 모두 그러하다. 물론 그냥은 안준다. "나중에 만나면 꼭 인사하기" 이것이 조건이다. 세상에 공짜란 없는 법이니까! 그래서 난 몇몇의 어린이들과 친구 아닌 친구가 됐다.

집에 들어오면 저녁을 먹고 오랫동안 유일하게 키워온 제랴늄 꽃을 다듬는다. 흰꽃 제랴늄은 너무 무성하여 언젠가 겨울아이님이 말씀하신 아욱 같아 보기 싫을 정도였는데 베란다에 내어두어 창을 열면 불어오는 바람에 새하얀 꽃잎들이 떨어지는 모습이 너무 아름다웠다. 바람이 없을 때는 시든 꽃잎을 따다 흩날리는데 그때 나는 꽃잎이 된다. 하나면 외로울 것 같아 데려온 자주빛 제랴늄, 사실 이 자주빛 제랴늄 꽃은 구입할 때 말고는 본 적이 없었다. 한겨울 내내 추위에 떨게 하고 돌보지 않았는데 스스로 꽃을 피웠다. 그가 나에게 꽃을 피워준 그날, 나는 내가 마시는 도자기 물병으로 그의 화분을 만들어 주었다.


저녁을 먹고 가벼운 차림으로 음악을 들으며 초등학교 운동장과 아파트 산책로를 걷는다. 서늘한 바람이 불어오는 밤길을 걸으니 가로등 불빛의 낙엽들이 많이 시려워 보인다. 어둠이 많이내려 앉은 시간이었어도 아파트옆 초등학교에는 운동장을 뛰는 사람 혹은 걷는 사람들 그 옆 농구대에 삼삼오오 시합하는 아이들 - 보이지 않을 것 같은 어둠속에서 내가 그들을 보고 느낄 수 있었던 것은 때마침 흘러나온 이자람의 8시간(녹색의자OST) 음악도 한몫했다. 난 그런 미니멀리즘적인 음악이 참 좋다. 단순함과 간결함 - 어쩌면 그것은 내 삶과 연관되어서 그런게 아닐까 생각한다.

가게 앞에서 마주치는 일상에서 돌아온 사람들의 작은 술판을 보며 집집마다 켜져 있는 불빛들을 바라보면 들어온다. 그들 모두의 삶이 부유하지 않을지라도 그들은 각자가 느끼는 일상의 소박한 즐거움과 행복을 느끼며 살고 있을 것이다. 나 역시 그러하다. - 가게에서 장을 보고, 들어오는 길에 나무들을 스다듬으며 엘레베이터에서 아이들을 만나길 바라고, 꽃잎을 다듬고, 책을 읽고, 산책하면서 음악 듣고 운동장에서 뛰거나 걷는 사람들을 보고 - 소박하지만 이 모든것이 나의 즐거움이다.

우리들에게서 가장 빛나던 때는 언제였을까? 잠들기 전 창밖으로 보이는 하늘을 볼 때 별들이 반짝이는 모습을 보며 저 별들이 가장 빛나던 때는 언제였을까? 그리고 나는 언제였을까? 행여 지나갔고 아직 오지 않았을지라도 나는 기다리지 않는다. 왜냐하면 그것은 지금 이 시간 이 순간들이 어쩌면 내 삶에 가장 빛나는 시간인 줄 모르기 때문이다.


2009.05.19 00:18 T 0 C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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