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지아빠를 만나던 날

가을밤이 깊어가면 갈수록
별들은 태초의 빛보다 더 맑고 아름다운 자태로 나를 내려다보고 있다. 그 빛은 생명을 다하며 사라져가는 초신성보다 수백 수십만배 밝고 아름답기에 나는 일찌기 이 세상에 없었던 그 빛을 보며 그들이 잠들어 있는 가을하늘로 조용히 다가가 삶의 파렛트속에 담겨진 기쁨이란 물감 하나를 꺼내어 지금의 나의 행복함과 함께 그것을 가을 하늘에 물들인다. 그리고 나는 소망한다. 그 빛나는 많은 별 가운데 나와 똑같은이가 살고 있다면 내가 물들인 작은 기쁨속에서 아프지말고 늘 행복하기를,
그리고 오늘 내가 만난 소중한 그에게도 그 행복과 기쁨이 퍼져나가길 ...

- 민지아빠를 만나고 돌아오는 새벽 버스안에서 -


  
이럴땐 참으로 난감하고 속상하다.

글을 잘 쓰고 싶은것보다. 마음속에 있는 것을 그대로 옮겨 적을 수 없는것이 때로는 너무나 슬플뿐이다. 더구나 이럴 땐 손을 아무리 씻어도 뭐라고 써야 할지 도무지 생각이 나지 않는다. 이렇게 행복한 마음들을 말이다.

지난 토요일에 그를 만나고 이제야 그에 대한 포스팅을 하는 것은 아직은 그를 만나고 온 것에 대한 여운을 간직하고 싶기 때문이라 생각한다. 그 이유로 나는 그가 곱게 포장하여 선물로 준 자전거 여행(김훈) 도 아직 뜯지도 않고 그대로 두고있다. 그는 그 지은이를 많이 좋아하는 것을 나는 알고 있다. 어쩌면 속속들이 너무나 비슷하거나 똑같은 그 무엇이 그날 나와 그를 만나게 했을 것이라 생각한다.


승차권을 끊고 버스를 기다리는 동안 아무것도 하지 않고 기다릴 수 있다는 것은 얼마나 즐겁고 행복한 일인가를 느꼈다. 나는 그곳에서 지나는 사람들의 갖가지 표정을 바라보고 그 사람들이 지닌 짐꾸러미와 나처럼 각자가 손에 쥐어든 승차권을 보며 이들도 모두다  나처럼 행복했으면 좋겠다고 마음으로 생각했다. 버스를 타고 단풍과 낙엽이 교차하는 이곳의 유명한 가로수길을 지날 땐 약속시간에 조금 늦을지라도 차가 막혀 조금은 천천히 가기를 희망했다.


하늘이 보이지 않을정도로 양쪽으로 줄지어선 포플러 나뭇잎들은 그와의 첫 만남을 축하해 주기라도 하듯이 잘 다녀오라며 바람에 손을 흔들어 주기도 하고, 몇몇 녀석들은 내가 앉은 차창밖에 메달려 나와 함께 그를 만나고 싶어했다. 그래서 나는 운전사에게 조금만 천천히 달려 달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내 마음을 알리 없는 운전사는 얄밉게도 더 빨리 달려 버스는 어느새 고속도로를 질주하고 있었다.

가을 햇살은 유난히 눈부시다. 그래서 사람들은 창가로 들어오는 햇살을 피해 커텐을 치고 자기가 좋아하는 음악을 듣거나 이미 깊은 잠에 빠져 코를 고는 사람, 친구와 약속을 정하고 그와소근소근 통화하는 사람, 나는 그 무리속에서 창밖이 화알짝 보이게끔 커텐을 걷고 시공간이 함께 만들어가는 추억에 음악과 함께 나의 몸을 맡기며 그를 만나러 갔다.

내가 그곳에 도착한 시간은 약속시간 보다 30분이 늦은 오후 6시 반이었다. 우선 나는 그를 만나기 전에 내려갈 승차권을 예매해야만 했다. 주말이라 제 시간에 온다면 매진될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었다. 나는 그와 보내는 시간을 미리 생각하고 왔기 때문에 내가 생각한 시간 정도면 그와 모자람 없는 시간이 될 것이라 생각했지만 결국 나는 표를 두번 반환하면서까지 그와의 짧은 시간을 아쉬워하고 이미 매진된 막차 전의 11시 버스를 예매해야만 했다.

약속 장소에 그는 보이질 않았다. 이유인즉, 그는 그곳에 먼저 도착해 그 주위로 다니면서 나에게 손대접하려는 수고를 하고 있었던 것이다. 내가 서점앞에 있었을 때 그와 나는 아주 가까운 곳에 있는 듯 했으나 붐비는 사람들속에서 찾기가 그리 쉽지 않았다. 서로의 위치를 확인하며 통화하는중에  그는 멀리서 내 모습을 보았던지 " 알았어요 ~ 저기 보여요 ^^ "

그리고 30초가 흘렀을까 ..40초가 흘렀을까 ...그 시간이 왜 그렇게 길게 느껴지던지, 나는 직감적으로 그가 내 가까이 있음을 느꼈지만 그는 보이지 않았다. 그리고 그 수많은 사람들 한가운데서 누군가가 나를 향해 큰 걸음으로 걸어오는 걸 보았다. 그때 그 모습을 뭐라고 표현해야 좋을지 모르겠지만 아무튼 그가 나에게 걸어 올 때는 소프트 포커스 같이 주위는 흐릿했지만 그의 모습은 아주 선명하고 뚜렷했다. 

그는 사무실에서 바로 오는 길이라 한손에는 가방을 들고 있었으며, 나와 똑같이 안경을 쓰고 나이에 맞는 멋있는 헤어 스타일과 서울토박이어서 그런지 햐얀 피부에 깨끗하고 청초한 모습이었다. 키는 나보다 조금 큰 듯 싶었으나 그날 나는 스니커즈를 신었기에 키는 똑같다고 스스로 우긴다 ^^

처음 만나면서 화알짝 웃는 모습과 서로에게 인사하는 것이 어색하지 않았음은  비록 사이버상이었지만 그속에서 현실과 연결되는 다리를 건너 서로의 깊은 마음을 읽을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것은 나의 보이지 않는 모습까지 그는 마음으로 보았고 나 역시 그가 이곳에 조용히 왔다 가더라도 그 발자국에 각인된 모습이 때로 힘들어 보이거나 때로는 고독해 보일 때 나는 그 얕고 깊은 깊이와는 상관없이 그를 늘 따뜻하게 안아주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것은 곧 나의 위로가 되기도 했었다. 스스로를 위로하기 위해 만든 이 작은 공간이 세상에서 하나뿐이 그와 나의 맑은샘이 된 것이다. 

마흔이 되어 인생의 황금기를 살아가는 남자의 마음은 힘들다. 남자의 마음은 바다와 같아서 그 모든것을 가슴으로 품을 수 있어야 한다는 생각에 힘들고 아픈 몫은 늘 혼자서 감당한다. 그래서 그 바다는 늘 잔잔하며 맑고 아름다운데 그의 끝없는 피와 땀의 노력의 산물이다. 나는 그를 바다와 같은 사람이라고 오래전부터 생각해왔다. 아주 오래된 고향의 불알친구처럼 만나도 너무나 편안하고 더 필요한게 없을까 생각하는 그 사소한 마음들은 향기로운 것에도 무감각이 되어 버린 콘크리트 속에서 오늘을 살아가는 나에게 사람 냄새를 느끼게 한다.

그와 저녁 식사를 하면서 오래전 포스팅에 쓴 글 처럼 그와 나는 술잔을 부딪쳤다. 그 울림이 어찌나 맑고 깨끗하던지 그것은 그를 처음 알게 된 그 옛날로부터 그날의 시간동안 긴 여운 띠로 우리 주위를 우정으로 휘감았다. 흐르는 시간도 인지 못하며 오고가는 얘기속에 알코올로 싸해진 개띠 둘의 눈이 토끼띠 처럼 변할 때 우리는 그곳을 나와 서점과 음반점으로 향했다. 나는 "윤용하 일대기(박화목)" 와  바바라보니가 부른 "모차르트 가곡" 음반을 그에게 선물했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나는 그것에 대한 포장도 하지 않고 건내주었고 그것이 아직도 마음에 쓰인다. 그런면에서도 그는 나보다 더 세심하고 섬세하다. 그는 나를 만나기전 서점에서 예쁜 것을 좋아하는 나에게 그 마음보다 더 예쁜 마음으로 선물을 포장해 멋스러운 리본도 함께 달아주었으며, 저녁식사 할 때와 그곳을 나와 술잔을 부딪칠 때 그는  내가 잠시 자리를 비운 사이에 나 모르게 모든 계산을 다 해버리는 아주 고약한 심보 (ㅎㅎ) 가 있음을 보았다. 내가 이렇게 흥분할 수 밖에 없는 것은 그건 내가 잘 쓰는 수법이기 때문이며 그것을 그에게 빼앗겨 속상했고 또한 그날 난 여러가지로 그 앞에서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그냥  KO 당하고 말았다. 나는 그것에 대해 반칙이라며 그에게 따졌고 그는 되로주고 말로 받을거라며 되받아쳐 나는 결국 두손을 두발 다 들고 속으로 다짐했다.  오기만 와라 ..말이든 되든 다 곱배로 갚아줄테니 ^^

나는 그에게 윤용하 일대기모차르트 가곡을 선물했는데 그것은 다음과 같은 이유에서이다.

윤용하를 추억하는 글에 선물님 사진도 없어 그가 외로울까봐. 나의 덧없는 몇글자로 그의 외로움을 위로하고자 합니다. 나는 정말이지 세상 제일 낮은 곳을 흘러다니는 폐수속에 신(神)이 있을 것이라고 믿고 싶습니다. 윤용하가 이 노래를 만들어내기 전까지 수많은 나뭇잎들이 물위를 떠내려갔을 터이지만 그로 인하여 이름없던 나뭇잎배들을 사람들이 추억하게 되었으니까요. 어쩌면 그였으니까 가능한 일이었겠지요.

2008.8.8 이른 새벽 민지아빠가.
< 나뭇잎배처럼 흘러가라>

나뭇잎배처럼 흘러가라 ... 그 포스팅의 댓글에서 나는 서두에 말한 것처럼 그의 깊은 마음을 보았다.  내가 간절히 원했지만 뜨거운 마음에 맺지 못했던 글에 대한 마침표를 그가 찍어주었던 것이다. 누구나 쓸 수 없고 설사 쓸 수 있다 하더라도 결코 드러낼 수 없는 것이 있다. 나는 가끔 그 포스트에 들어가 그의 댓글을 읽는다. 나는 그의 댓글을 내 포스트의 글 만큼이나 아끼고 좋아한다. 가볍게 달려들지 않고 때로는 하고 싶은 말을 마음속에 품고 벙어리처럼 침묵할지라도 나는 그 마음까지 다 읽을 수 있다. 그것이 내가 그를 좋아하는 이유이다. 그리고 또하나 선물한 모차르트 가곡은 슬프지만 아름다운 그 가사의 내용이 그를 따뜻하게 해 주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에 선물했다.

글과 글은 마음으로 연결되고 마음과 마음은 이렇게 아름다운 우정으로 연결되었다. 비록 피로서는 연결 되지 않았지만 나는 이럴 때 우정은 피보다 더 진하다고 말한다. 나는 들꽃같은 음악을 좋아하고 들꽃같은 사람을 사랑한다. 그는 들꽃같은 사람이다. 사랑과 우정은 참으로 사람의 마음을 따뜻하고 넉넉하게 해 준다. 일생을 살아가면서 곁에 두고 싶은 몇가지 안되는 그 속에 들어온 사람 - 먼훗날 이 세상을 떠나 서로가 다른 별에서 태어나도 그 별에서도 지금 간직한 우정을 잃지 않는다면 수천년이 지나도 그가 나에게 선물해준 책 표지에 쓴 글처럼 그런날이 또 올 것임을 - 돌아오는 새벽 별들의 반짝임으로 나는 그것을 믿었다.


     혼잣말 ...
  1. 민지아빠를 만난 그날의 승차권은 민지아빠가 선물해 준 책의 북마크로 쓰기로 했다. 그 책과 제일 잘 어울리는 북마크는 그것 밖에 없기 때문이다.
  2. 표현하는 것이 한계가 있음을 느낀다. 물론, 그것은 나의 생각의 한계에서 비롯되며 그와 더블어 어휘력이나 깔끔하게 정리되지 못하는 두서없는 문장력도 한몫한다. 그래서 어떨 땐 앞뒤 문맥이 맞지 않고 심지어 맞춤법이나 띄어쓰기가 엉망인 것도 있다. 그래서 글을 다 쓰고 훗날에 고치는 경우가 허다하다. 그러고 보면 - 한글 결코 쉽지만은 않다. 때로는 나 조차 무슨 말인지 모를 때도 있지만  나는 그 글에 더하거나 빼지도 않고 표현하기에 부족하지만 스스로 만족한다. 
  3. 나는 포스팅을 하면서 가끔 배경 음악의 제목을 나타 내지 않는다. 그것은 언젠가 그 음악에 대해 따로 포스팅을 하기 때문이다. 포스트에 배경 음악의 제목이 없으면 글이 꼭지가 되는 것이며, 그 음악은 훗날 기존에 쓰여진 글에 트래백을 걸어 관으로 연결 시킨다. 그렇게 알게 되는 음악은 마음에서 쉽게 잊혀지지 않고 오랫동안 그속에 자리하며 더 큰 기쁨을 가져다 주기 때문인데, 음악은 귀로 듣는게 아니고 마음으로 듣는 것이기 때문이다.



2009.09.29 23:19 T 1 C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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