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걸었던 과수원길

내 고향은 사과꽃 향기 가득한 경상북도 영주, 학창시절 잘 가던 곳 중 하나가 부석사였다. 그곳의 과수원길은 영원히 잊지 못한다. 아득히 먼 학창시절, 친구들과 그 길을 가면서 금방 딴 사과를 사서 졸졸 흐르는 개울물에 씻어 먹기도 하였고 나의 첫사랑이었던 사람과 함께 걸었던 아스라한 추억이 아직 남아 있는 과수원 길~

나는 그 길을 걸었을 때, 풋풋하게 덜 익은 사과처럼 순수했던 마음과 어느 가을날 그 사람이 나에게 손잡아  주었을 때,  아직 덜 익은 사과처럼 빨갛게 얼굴이 달아 오르던 모습들이 아름다웠던 추억이였던 만큼이나 너무나 슬프게 다가온다. 그리고 가끔 그날의 기억에 때로는 눈물 짓곤 한다.

이렇듯 난 눈물도 많고 슬픔도 많은 것은, 지난 행복 했던 날에 대한 감사함이며 또한 앞으로 있을 나의 슬픔의 배려 때문이다. 아직 그 개울물은 맑은 것이며 그 과수원길도 여전히 있지만 그때의 그 사람은 없다. 사과꽃처럼 아름다웠던 그 사람은 피어나지 못하고 오래전 하늘길로 떠났다.

수십년이 지나 서로가 고향을 떠나 왔음에 그 사람은 내가 사는곳과 아주 가까운 곳에 묻혀 있다. 보고싶어도 갈 수 없는 곳이 있지만 옆에 있어도 갈 수 없는곳이 있다. 그 슬픔은 겪어보지 않고 눈물을 흘리지 말라고 하는 것은 모순이다. 지금쯤이면 그곳의 사과꽃은 바람에 흩날리어 다 사라졌겠지만,  오랜 옛날 그 사람과 내 마음에 내려 앉은 사과꽃은 언제나 남아 있다
. 





김공선 선생님 (작곡자)

올 3월 나는 절실한 마음의 친구와 함께 "서울시 소년소녀 합창단" 정기 연주회에 다녀온 일 이 있었다. 작년부터 다니기 시작한 이 공연은 지방에 있어도 꼭 보고 싶은 공연중에 하나이다. 공연의 주제가 '우리의소원' 발표 60주년 기념음악회였다. 그 곡의 작곡자 안병원 선생님의 지휘로 마지막에 "우리의소원" 을 부르는데 얼마나 가슴 뭉클한 순간이었는지 모른다. 그때 막 생각난 것이 그 곡이 2절까지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2절은 통일이 된 것을(가상) 가사로 만들어 먼훗날 정말로 통일이 되었을 때 불렀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였는데 내 생전에 2절까지 부를 일은 없을 것만 같다.

그 공연에서 내 좌석은 1층 8열 13번이었다. 그 좌석은 객석 한가운데 있어 다니기가 여간 불편해 보이지 않았다. 자리를 확인하고 객석으로 들어가려고 하는데 어떤 연세가 많으신 분들이 그 통로앞에서 얘기를 나누고 계셔서 내 자리로 들어가기가 여간 쉽지는 않았다. 그래서 그분들에게 정중하게 좀 들어가야 겠다고 말하니 오히려 그분들이 더 미안했는지 죄송하다며 이내 자리에서 일어나시면서 통로를 열어주셨다. 물론 내가 조금 돌아가면 될 수 있는 상황이었지만 통로에서 마냥 그렇게 얘기하는 것이 썩보기는 좋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오기(?)를 부려 그분들에게 속으로 " 사람들이 다니는 통로앞에 있으면 안되시지요" 하고 혼자말로 궁시렁 거리며 내 자리로가서 앉았다. 공연이 다 끝나고  마지막에 안병원 선생님이 동요 작곡자 몇분을 소개하는 시간을 가졌다. 그때 "과수원 길 " 을 작곡하신 김공선 선생님 일어나 주세요" 하고 손을 가르켰는데 .. 허걱,  내 괜한 심술에  죄송하다며 깍듯이 대 하시던 그분이 아니시던가 - 얼굴이 달아오르고 조금전 내 경솔함에 스스로르 꾸짖으면서 날 원망했다. 나가면서 어떤 이는 그 선생님과 악수도 하고 인사도 몇번씩하고 했는데 나는 차마 하지 못하고 그곳을 나와야만 했다. 

곡에 가사를 붙이신 박화목 선생님은 가곡 "보리밭"의 작사가이다. 지난 글에서 윤용하의 얘기를 했는데 그 윤용하의 "보리밭" 곡에 박화목 선생님이 가사를 붙이셨다. 춘천교대 교정에 가면 이 동요의 노래비가 세워져 있으며 박화목 선생님은 2005년 7월9일에 세상을 떠나셨다.



2008.04.30 01:01 T 1 C 0
 

SIMPLEGIFTS           RECENTPOST          CATEGORY           GUESTBOOK

방황끝에서다

엉거주춤한 나의 일상과 얼렁뚱땅한 나의 음악이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