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조 왕건은 분단된 시대

태조 왕건은 분단된 시대를 극복하고 통일 고려를 세웠다. 고려는 해빙기의 천국으로서 독자적인 세계관을 가지고 있고 스스로를 황제국이라 칭했으며, 앞선 왕조의 문화적 전통을 거역하지 않고 열린 자세로 융합했다. 외국인을 장관으로 임명할 정도로 개방적이었고, 활발한 물적·인적 교류가 이뤄졌다. 고려 건국 1100주년을 기념하는 이번 특별전에는 주변국과의 활발한 교류를 통해 고려의 문화적 성과를 살펴보는 4가지 이야기가 준비됐다.

수도를 중심으로 한 화려한 고려 예술을 시작으로 제2의 공간인 개경(開京)을 시작으로 고려인들의 삶에 큰 영향을 미친 불교 미술이 사찰의 세계를 통해 탐구되고 있다. 세 번째 공간에서는 차 향이 가득한 다방에서 고려의 지식인들을 만나게 된다. 마지막은 예술성의 절정에 이른 공예예술의 아름다움을 살펴볼 수 있는 공간이다. 고려의 찬란한 도전에 직면한 과거 고려로의 여정은 1,100년 전부터 시작된다.

고려의 수도
우리 역사상 처음으로 나라의 중심부에 위치한 개경이 새로운 수도가 되었다. 고려는 과거 해양 강국이 세운 나라로서 외부 세계에 개방되어 있었다. 고려의 관문이자 국제 무역항으로서 이 섬은 매우 생소한 특징을 지닌 외국인들에게 개방되어 있었다. 개성 인근에서는 이슬람교 예배에서 성수를 담은 유리주전자가 출토됐다. ‘쌍화점’ 등 고려가요를 살펴보면 개성에는 위구르인들이 운영하는 만두집이 있다. 다양한 기록과 유물을 통해 다양한 이국인이 살았던 개경의 모습을 상상해볼 수 있다.

높이 17cm, 개성 인근에서 발굴된 유리 주자, 국립중앙박물관장
높이 17cm, 개성 인근에서 발굴된 유리 주자, 국립중앙박물관장
최고의 아름다움, 궁중 예술

상업이 중요하고 물류가 국력이었던 시기에는 왕권력과 최고의 미를 상징하는 화려하고 화려한 왕실 예술이 수도 개경을 중심으로 펼쳐졌다. 고려 왕실은 가장 큰 예술 후원자였으며, 왕실의 지도 아래 회화, 금속공예, 칠기, 도자기 등 최고의 재료로 새로운 차원의 재료 문화가 탄생하였다. 특히 10세기경 고려는 중국을 제외한 어느 나라에서도 만들어지지 않은 자체 생산에 성공해 탁월한 성과를 거뒀다. 무수한 실패의 결과로 당대의 신소재인 도자기와 고려청자가 그 나름의 미적 수준에 도달했다.

청자꽃 모양의 발, 12세기 고려시대, 높이 9.2~9.5cm, 일본 오사카 시립 동양도자박물관장
청자꽃 모양의 발, 12세기 고려시대, 높이 9.2~9.5cm, 일본 오사카 시립 동양도자박물관장
c大阪市立東京.
나전 어머니 국화 덩굴 디자인 합, 12세기 고려, 4.1cm 높이, 미국 메트로폴리탄 박물관장
나전 어머니 국화 덩굴 디자인 합, 12세기 고려, 4.1cm 높이, 미국 메트로폴리탄 박물관장
c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이미지 원본: 뉴욕 아트 리소스
전경을 한눈에 볼 수 있는 광경
전경을 한눈에 볼 수 있는 광경
고려 건국국가와 희랑사

우연한 기회에 위대한 성자를 만난 이야기는 영웅적인 전기에 등장한다. 영웅이 아니더라도 우리의 삶을 바꾸는 결정적인 만남이 있다. 태조 왕건과 희랑대사의 만남은 이렇게 운명적이고 결정적인 만남이었다. 희랑은 후삼국시대에 수세에 몰린 왕건을 도왔고, 후에 왕의 스승이 되었다. 고려의 시조인 왕건과 왕의 스승인 희랑은 500년 동안 지속된 힘을 상징한다. 두 사람의 동상은 만들어진 이후 한번도 만난 적이 없다. 언젠가 선생님과 학생의 첫 만남이 이루어지길 바란다.

10세기 고려 건칠랑 스님의 동상, 보물 999호, 법보종찰, 해인사 관장
10세기 고려 건칠랑 스님의 동상, 보물 999호, 법보종찰, 해인사 관장
태조 왕건상, 10~11세기 고려, 북한 국보, 평양 북한중앙역사박물관 소장
태조 왕건상, 10~11세기 고려, 북한 국보, 평양 북한중앙역사박물관 소장
1100년 지혜
고려는 세계 최초의 금속활자를 만들기에 충분할 만큼 오랜 출판 역사를 가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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